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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밤 집에 귀가했다. 가족들은 모두 이미 잠에 들어있는 밤이었다. 부엌불을 킨다. 어둠속에서 그 공간만 빛이 난다. 일단 냉장고를 열어보고, 뭐 먹을게 없는지 기웃거렸다. 마음에 드는 반찬통 하나를 꺼내들고, 가스레인지위에 얹어있는 냄비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뚜껑을 연다. 항상 시레기국과 같이 나의 식욕을 돋우지 않는 류였거나, 깨끗이 비워져있기 일쑤였다.
아마 엄마와 냉전을 치루고 있는 후로 부터 였던것같다.
아니, 오늘은 웬일인가. 엄마가 나에대한 화를 푼것인가. 붉은 국물에 고기가 가득차있는 순댓국이 가득차있었다. 입맛을 다지며 가스불을 키고 국물을 데웠다. 그사이 밥솥을 열어서 밥을 퍼고, 반찬통을 가지고 테이블에 와 앉는다.
국만데워지면 되었다. 모든게 준비되어있을때, 오직 그것만 있으면 될때, 그때의 기다림은 좀처럼 버티기 힘들다. 아직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전이었지만, 국자를 들고 일단 냅다 펐다. 다시 식탁에 앉았다. 드디어 나만의 심야식당이 준비됐다.
일단 반찬을 떠먹어봤다. 매쉬포테이토 샐러드였다. 냉장고에 있느라 좀 차가운 식감이었지만 음, 그럼에도 꽤 만족스러운 맛이었다. 다음으로는 밥을 한입 퍼먹는다. 밥솥에서 갓나온지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입에 넣자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전에 먹은 포테이토샐러드의 냉함이 입안에서 채 가시기전에 들어온 따뜻한 한입은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 마무리는 고대하던 순댓국을 맛본다. 고대했지만,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지근했기 때문이다. 딱 몸의 온도 37도였나보다. 국이 입으로 들어온순간, 국은 그저 몸의 일부가 되어, 아무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몇번의 숟가락을 들다가, 다시 가스레인지를 킨 이유였다. 모든게 적당히 따뜻한 밥상이었으면 했다.
국의 양이 꽤 양많아서 부글부글 끓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달그닥달그닥 흔들리는 뚜껑소리에 다시 부엌으로 향했다. 뚜껑을 열자 확 피어오르는 연기는 국물의 깊은 맛의 예고편같아보였다. 한그릇 다시 떠 식탁에 앉는다.
따뜻함 사이로 사골의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만족스러웠다. 그때 밥한입을 뜬다. 근데 아까와는 다르게, 차갑다. 그 사이 밥이 식은 것이다. 순댓국의 따뜻함이 입안에 맴돌때 들어오는 차가운 밥이 이젠 어색했다.
이렇게 모든것이 따뜻하고, 완벽하게, 한끼 식사를 시작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정말로 모든 반찬의 적절한 온도와 식감을 유지하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한가지에 신경쓰면, 그새 다른 한가지는 ‘냉'해지기 마련이었다. 우리의 삶 같았다. 한쪽의 신경쓰면 금새 다른 것들은 냉해지거나 차가워져만 간다. 다시 그 쪽으로 돌아갔을땐, 이미 때는 늦어있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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